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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와 불꽃놀이와 새로운 출발 > - 유이

​가면라이더 리바이스(2021) / 죠지 카리자키 & 카도타 히로미

불꽃놀이. 폭죽 등의 화약에 여러 금속 화합물들을 첨가하여 하늘에 형형색색의 빛의 꽃을 쏘아 올리는 놀이. 어릴 때는 가족들이 모여 특별한 날에 하곤 했었다. 물론 ‘어릴 때’라고 회상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긴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야 이가라시 가족은 장남인 잇키가 태어났을 해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매년 불꽃놀이 이벤트를 해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안 하는 편이 좋지 않아? 라는 사쿠라의 말은 우리 가족의 행복이니까! 라며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는 아빠의 말에 기각되었다.

다이지는 점심시간에 본인을 찾아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연구실로 찾아갔다. 블루버드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으면서 리더인 그를 제멋대로 부르는 사람은 조직 내에서 한 사람뿐이었다. 죠지 카리자키. 전 직장이었던 페닉스에서 가면라이더 드라이버 개발자였으면서, 현재 블루 버드에서는 개발자 겸 과학자로 활동하는 그였다.

“Hey~ 우리 바쁘신 다이지~.”
“카리자키씨. 무슨 일이신가요.”
“네게 전해줄 게 있어서 말이지. 겸사겸사.”
“전해줄 게 대체 뭔지….”
“다이지는 불꽃놀이 좋아하려나. 불꽃놀이는 말이지, 초기에는 횃불을 이용한 방식이었는데~”

이러다가는 불꽃놀이의 역사를 몇 시간 동안 듣게 될지도 몰라. 다이지는 그런 생각에 서둘러 말을 끊었다.

“뭔가 새로운 개발이라도 하신 건가요?”
“다이지는 역시 이해가 빨라서 좋아.”
“최근 며칠 동안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을 막으셨다 들었던 것 같아서.”
“집중하는 데 들락거리는 대원들은 방해니까.”
“카리자키씨에 대해 알고 있으니 저는 괜찮지만….”

카리자키는 검은 토끼 형태로 생긴 공을 꺼내 들었다. 귀만 있을 뿐인데도 ‘토끼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이거, 써줄래? 너희 가족끼리 보통 밤에 그런 행사 같은 걸 한다면서. 사용 방법은 알려줄 테니까.”
“그게 뭔가요? …아니, 그것보다. 그 소리는 누가… 형이 말해준 건가요?”
“그야 그런 사람은 잇키 뿐이지? 불꽃을 쏘아 올리는 걸로 한 해를 시작한다니, 꽤 느낌 좋잖아. 역시… 가족인가.”
“집에 어린애도 없는데… 그렇게 됐네요.”

다이지는 그 토끼 공 형태의 폭죽을 양손으로 받았다. 카리자키가 한 손으로 들어서 건네주길래 가벼운 줄 알았는데 안에는 꽉 차 있는 건지 꽤 무거웠고, 받자마자 살짝 휘청했다. 뒤쪽 아래 부근에는 보이지 않던 두껍고 짧은 실이 마치 토끼 꼬치처럼 둥글게 말려있는 게 보였다.

“카리자키씨가 이런 것까지 만드실 줄은 몰랐는데….”
“나야 뭐 개발자잖아? 이것저것 만들거나 수리하는 데 꽤 재능이 있어서.”

보통 본인이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하나. 너무 솔직해. 다이지는 그의 솔직함에 곤란할 정도였다.

어서 앉으라는 그의 재촉에 못 이겨 다이지는 결국 낮은 소파에 앉았다. 낮은 탁자에 올려두었다간 굴러가 떨어질 것만 같아서 둥근 검은색 토끼 공은 제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이 방의 낮은 탁자와 소파는 전의 스카이 베이스의 사령관실에 있던 것과 같은 디자인이었다.

그를 마주 보고 앉아서 쓰는 법에 대해 들었다. 카리자키가 들고 온 작은 대포는 검은색 공과 디자인을 맞추었는지 토끼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근데 카리자키씨. 이것들… 이대로 들고 가도 괜찮은 건가요?”

그냥 갖고 가도 되냐 물어봤지만, 실제로는 이 두 개를 본인 혼자서 어떻게 챙겨가냐는 의미였다.

“응? 그럼. 그 크기에 맞는 쇼핑백 같은 건 없어서 말이지. 괜찮아. 몇 번 정도는 떨궈도 문제없으니까. 그럼 내 혼신의 걸작, 잘 부탁해.”

리더님. 마지막에 그렇게 말하고는 카리자키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전과는 다른 비웃음이 포함된 그런 웃음은 아니었다. 농담, joke였다. 가끔 그는 놀리듯이 그런 호칭으로 다이지를 부르곤 했다. 그와 반대로 다이지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카리자키씨가 직접 가시는 게 아닌가요?”
“…그런 것보다 직접 전해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그 뒤로 할 일이 있어서 무리거든~.”

“아, 그리고 카리자키씨. 혹시 이번 신정에…….”

노크 소리가 두 번. 문이 열리고 히로미가 들어왔다.

“다이지. 손님이 와 있던데.”
“네? 저요?”

눈을 굴리다 이내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다이지는 한 손에 각각 대포와 공을 안아 들고는 문은 몸으로 밀어서 열면 될 터였다. 문에 등을 기댔을 무렵, 카리자키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게 할 말 있던 거 아니야? 다이지.”
“아니, 괜찮아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카리자키씨. 그럼.”

다이지는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무렵, 카리자키를 마주 보고 앉았다.

“할 말이라도 있어? 히로미.”
“그게…….”

머뭇거리는 눈치였으면서 히로미는 제가 할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신년 저녁 한 끼 같이 먹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는지 카리자키는 히로미와 시선을 맞추고는 눈을 몇 번 깜박였다. 그의 흰색 머리핀들이 전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What?”
“식사. 같이 먹자고. 전에 말했었잖아, 카리자키.”
“그런 건 보통 그냥 하는 소리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 테고. 너도 같이 보낼 사람은 있을 거 아니야. 고향 내려가야지.”
“…집에 이제 아무도 없어서.”

그 히로미의 말을 카리자키는 단박에 이해했다. 그는 내리깔은 목소리로 미안하다 사과했다. 괜찮다며 히로미는

“나랑 괜찮겠어? 거의 데이트 제안 같은데.”
“하? 무슨 소리를…….”
“-라는 농담~. 그런 표정까지 지을 건 없잖아?”

히로미는 반응이 재밌어서 좋다니까. 전과 같은 하이 텐션으로 무어라 말하는 카리자키의 말을 그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얼마나 대화를 나누었을까,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는 다른 할 일이 있다며 히로미는 먼저 방을 나갔다.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리자키는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


히로미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카리자키는 없었다. 그는 전에 입던 것보다 두꺼운 코트까지 걸치고 목도리도 두르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꺼냈다가 근처의 큰 시계와 시선이 마주쳤다. 약속 시간보다 약 20분가량 이른 시간이었다. 새로 온 알람은 없었다. 메신저 앱을 넘겨보니 오늘 받은 것들이 잔뜩이었다. 대부분 새해를 축하하는 내용뿐이었다.

약속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을 무렵, 저 멀리 카리자키가 걸어왔다. 평소와 같은 얇은 외투에 오늘은 무슨 일인지 단정하게 안에는 검은색 목티와 함께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히~ 로~ 미이~.”
“아, 카리자키. 온 건가.”
“오래 기다렸어?”
“아니, 별로.”
“귀가 엄청 붉은데?”
“추위를 잘 타서….”

거짓말을 하려면 좀 더 노력하는 편이 좋겠는데. 카리자키는 웃으면서 히로미에게 무언가 던져주었다. 히로미는 양손으로 받아서는 확인했다. 꽤 따끈따끈한 핫팩이었다. 히로미는 제 손의 핫팩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다 일단 차가운 귀에 가져다 댔다.

“연 가게가 없으면 어쩌려고 이런 날 저녁을 먹자고 했어.”
“…그랬다면 직접 했겠지.”
“히로미가? 직접? 앞치마 입은 모습은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네. 신년 선물로 줄까? 히로미가 그렇게 귀여워하는 러브코프 디자인으로~.”
“필요 없어.”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라 했으니까. 기대하고 있어도 좋아.”

받는 사람도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닌지. 속으로 할 말을 꾹꾹 눌러 담고 히로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좋은 날 굳이 말을 얹어서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었다. 히로미는 카리자키를 따라 시내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


저녁 식사는 꽤 만족스러웠다. 히로미가 추천한 곳이었고, 가격 대비 전반적으로 좋은 그런 유명한 곳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계산은 먼저 제안한 히로미가 했다. 물론 카리자키가 본인도 돈이 있으니 나눠서 내는 건 어떠냐는 말에 그럼 커피라도 사라며 기어코 히로미가 본인의 카드를 꺼낸 것이었다.

지나가던 공원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둘이 나란히 걸어가다 카리자키의 모습이 사라졌다. 히로미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산 지 얼마 안 된 카페의 일회용 커피컵을 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몇 발짝 뒤에 카리자키는 가만히 멈춰 서서 불꽃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도 비슷한 게 들려 있었다. 히로미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먼저 말을 걸었다.

“…카리자키. 잠시 보다 갈까.”
“응? 아, 아니. 그냥 시끄럽길래. 가자. 춥네. 히로미도 피곤하다며.”
“아니, 괜찮아. 나도 구경하고 싶어서. 조금 있다가 가자.”

카리자키는 하나 남은 가장자리의 빈 벤치의 가운데 털썩 앉았다. 다른 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히로미는 카리자키의 어깨를 두 번 살짝 두드렸다. 카리자키는 그 신호를 받아들이고는 순순히 옆으로 이동했다. 그의 옆에 히로미는 앉았다.

“히로미.”
“그래”
“왜 나랑 먹자고 했어?”
“왜 그런 걸 묻는 건지?”
“들었어. 다이지가 제안했다면서. 본인 가족이랑 같이 먹는 게 어떠냐고. 저녁 정도는 언제든지 먹을 수 있던 거잖아. 같이 먹자고 한 거지 ‘단둘이’ 먹자고 한 적은 없던 거고. 하필 왜 오늘. 나랑 둘이서?”

잠시 정적. 둘 사이의 조용함은 하늘의 불꽃 소리가 채워주었다. 카리자키가 히로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바로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히로미는 예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둘이 있는 시간이 좋을 것 같아서.”
“……What?”
“아니, 무슨 의미가 있던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네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져서…. 그렇게 말하는 카리자키 너도 사실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보내고 싶었을 거 아니야.”
“나는… 그런 적 없어. 그럴 자격도 없고.”

지금까지 카리자키가 주말이 아닌 공휴일을 누군가와 기념하며 보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가족이랑 그나마 보낸 것도 어릴 때뿐이었고, 지금의 그의 기억에도 그리 남아있지 못했다. 그런 카리자키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바라본 이가라시 가족은 달랐다. 물론 카게로우 건이라던가 장관과 기프와 연관되어버린 다이지의 건으로 충돌이 있긴 했지만, 의견이 충돌하고 다투는 것도 그만큼 가까운 사이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타인과 교류하는 평범한 일상을 살짝은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주 조금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카리자키는 그들에게 먼저 부탁할 처지는 아니었기에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과거에 했던 본인의 잘못은 지워지지 않으니까.

“……구나.”
“응?”
“카리자키 너도 바보 같을 때가 있다고.”
“뭔데, 그 발언.”
“그럴 리가 없잖아. 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일이 해결되었는데. 아직도 감사하고 있어. 물론 그동안 한 일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속죄하려 노력해왔잖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법이지. 그걸 어떻게 해결하는지는 그 사람에게 달린 거고.”

카리자키는 피식 웃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히로미는 너무 상냥하다니까.”

둘은 이후 침묵을 유지한 채 각자 하늘을 바라보았다. 꽤 큰 행사였는지, 아니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건지 수많은 불꽃이 계속 올라왔다. 히로미는 옆의 카리자키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의 노란색 안경알에는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반사되어 보였다. 순간 시선이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에 히로미는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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