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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레귤러의 라이벌 > - 해나

가면라이더 지오(2018) / 토키와 소고 & 묘코인 게이츠

*V시넥스트 게이츠 마제스티 이후 시점, 리얼 타임.

 

“소고.”

 

선선한 바람이 휘날리는 가운데, 게이츠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공원의 구석진 언덕에 나란히 앉아, 저 너머에서 터트리는 웅장한 불꽃놀이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도수도 낮고, 편의점에서 요즘 유행이라고 홍보해대는 맥주 캔을 깐 채로, 바삭한 식감이 일품인 싸구려 새우 과자, 입안에 칼칼함이 감도는 매운 컵라멘을 안주로 곁들여 이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한 해가 다 지났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절경에 도수의 힘을 빌려 알딸딸하게 취해 있을 때 게이츠가 내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웃었다. 술기운 때문에 괜스레 입꼬리가 더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게이츠는 내 미소에도 별 반응 없이 그저 할 말이 있다는 듯 빤히 쳐다볼 뿐이었고, 결국 나는 헤실헤실하면서 그를 검지로 쿡쿡 찌르며 약하게 미는 척했다.

 

“왜 그래, 게이츠―으!”

 

그 사이에 게이츠는 나무젓가락으로 컵라멘을 한 뭉치 건져 올리더니, 후후 불어 모락모락 솟구치는 김을 내 쪽으로 몰아치게 하고는 맛깔나게 후루룩 삼켜냈다. 그는 국물까지 시원하게 꿀꺽꿀꺽 삼키고 나서야, 입가를 훔치며 다시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너는 말이지, 왜 왕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응? 그 질문, 오랜만이네.”

 

뭔가 정신이 확 깨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게이츠의 의도를 차근차근 짚어보았다.

 

“뭐야, 뭐야. 설마 게이츠 군은 아직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혹시, 구세주가 되겠단 네 소원, 그만둔 거 아니지? 나,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말 하긴 했지만― 음, 정확히 말해서는 그렇게 바랐다고 생각하는 중이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타박하는 거라면 너무한걸.”

 

나는 바보처럼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지껄였다. 게이츠는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나 본지, 눈썹을 씰룩이다가 큰 목소리로 나에게 호통을 쳤다.

 

“그런 게 아니야! 어째서 네가, 태어날 때부터 왕이 되고 싶다고 굳게 생각하는지, 정말로 모르는 거냐?”

 

“에? 그러니까, 그게… 음, 운명입니다만……?”

 

나는 집게손가락을 내 볼에 점점 파고들게 하면서 잔뜩 고뇌하다가, 생뚱맞아 보이는 답변을 내놓았다. 게이츠는 골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빛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각오하라는 의미가 가득 담긴, 그런 눈동자로 나를 이글이글 쳐다보았다.

 

“소고, 잘 들어라.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이레귤러다. 여기에 있으면 안 돼.”

 

응? 아니, 아니. 게이츠 군? 우리 여태까지 고등학교도 잘 다녀왔잖아? 잘 졸업해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창창한 인생을 즐기는 중인데, 이게 무슨 소리? 뭔가 엄청나게 거대하고 불안한 말에, 나는 격하게 손사래를 치며 애써 웃어보았다. 그 말의 무게가 실감 나지 않아서, 게이츠가 그저 장난을 치는 거라고 믿고 싶어서 당황스러웠지만 하하 웃고 넘기려 했다.

 

“농담이 아냐. 너는 기억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기억이 없다면… 역시 너, 그때 뭔가 엄청 멋진 폼으로 변신했을 때!”

 

게이츠는 남은 맥주를 홀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더운 날씨가 전혀 아닌데도, 그의 이마에는 소량의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쾌적한 밤공기를 만끽하며, 그는 이마를 손등으로 찍어 누르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한꺼번에 듣기에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그런 말이었다.

 

「그래. 네가 아는 그 변신 폼의 이름은 게이츠 마제스티. 그리고 내가 게이츠 마제스티로 변신했을 때를 마제스티의 날이라고 하자. 나는 마제스티의 날에 기억이 돌아왔어. 그 기억은, 다음과 같아― 이 세계의 이전 세계가 담겨 있어.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세계를 현세계(現世界),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전 세계를 전세계(前世界)라고 부를게.

 

전세계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네가 ‘가면라이더 지오’로 지낸 여정이 담겨 있어. 그리고 너는 전세계에서 태어나 쭉 살아가던 사람이었지만, 난 아니었다. 내 시간대는 2018년의 전세계에서 흐른 게 아니라는 뜻이지. 나는 너를 막기 위해서 2068년에서 넘어온, 전세계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미래인’이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어쩌면 그때의 나는 네가 지오가 되는 ‘정석인 역사’에 필요 없는 존재였을 수도 있단 거야. 조금 다른 얘기를 해 볼까. 2068년, 전세계의 나와 함께 2018년으로 넘어온 츠쿠요미는 그 전세계에서 네가 마왕이 되는 데에 필요한 존재였어. 왜냐하면, 그는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존재니까.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을 맡았던 스월츠, 그 사람과 츠쿠요미는 원래 같은 세계에서 남매지간으로 살던 사이였거든. 게다가 2068년의 세계에서 살던 사람도 아니었어. 그런데 스월츠가 자신이 살던, 전세계와 2068년의 세계와 다른, 별도의 세계를 츠쿠요미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자 츠쿠요미를 2068년에 18세 소녀로 심게 한 거다. 그녀는 내가 없이도, 너를 만나러 갔을 거야. 그리고 그녀는 모순점을 발견해. 네가 왕의 계기를 품게 된 이유를 찾다가, 2009년의 교통사고에 휘말려. 스월츠가 지오가 될 아이를 찾기 위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냈고, 그 덫에 보기 좋게 걸려든 츠쿠요미는 너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지오가 되는 역사를 부추겼지. 그짓거리를 통해, 스월츠는 네가 왕의 꿈을 키운 걸 그때부터 머릿속에 심었고, 심어야만 했어. 그렇게 그는 세계를 파괴하려 했지…….

 

너무 많은 걸 말했나. 아무튼, 내가 없어도 너는 전세계에서 가면라이더 지오가 돼야 했을 운명이었고, 오히려 이게 마왕으로서의 지오― 오마 지오의 ‘정설’에 가까웠다. 그런데, 내가 너를 저지하기 위해 2018년에 개입한 순간, 흐름은 엉망이 됐어. 그때 나는, 변신도 하지 못하는 너를 죽여버리겠다고 선언했거든. 그렇기에 지오의 역사엔 뜻밖의 ‘라이벌’이 추가된 거다. 그것도 출처 불명의 라이더가, 라이벌이 된 거지. 이쯤에서 2068년의 그 세계에, 2018년의 네가 첫 변신을 한 걸 기리기 위해 동상이 세워져 있다는 정보를 알려주도록 하지. 이걸 왜 말하냐고? 간단해. 그때 내가 너의 라이벌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더라면, 네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 동상도 세워지지 않았을 거다, 아마도. 전세계의 너는 나를 마주치고 그 자리에서 변신했으니까. 아무튼, 역사가 필요로 하지 않는 내가 지오의 길에 끼어듦으로써, 내가 없이 돌아갔어야 할 ‘지오의 올바른 역사’가 오히려 내가 있어야 돌아가는 ‘또 다른 새로운 역사’가 된 셈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싶겠지. 그래, 나도 안다. 네가 이 방대한 양의 이야기를 단박에 이해하지 못할 거로 생각해. 나도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결국 이제야 풀어놓게 되었으니까. 요약하자면 이거다. 내가 없었으면 현세계 없이, 너는 역사가 바라는 방향대로 ‘올바르게’ 자랐을 거야. 물론 츠쿠요미도 그 역사에 맞춰, 잘 자랐겠지. 하지만 나는 달라. 내가 전세계의 그 자리에 너와 함께 있었기에, 전세계의 파괴와 현세계의 창조를 유발한 셈이다. 파괴와 창조는 한 끗 차이라지만, 글쎄. 나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자세한 건 알려줄 순 없지만, 난 전세계에서 너를 만나고, 라이벌이라 생각했던 너를 동료로 점차 인정하게 되더니, 결국 너에게 감화되었어. 그래서 나는 최후의 날에 너를 위해 죽었고, 넌 그것을 계기로 너는 오마 지오가 되어 전세계를 파괴하고 현세계를 창조한 거다. 이대로 살았다면, 아무 문제 없이 지나칠 수 있었어.

 

하지만 나에게 마제스티의 날이 도래한 순간, 어긋난 거야. 한 명이라도 그 모든 일을 기억하면, 틀린 거라고. 기억해도 아무 상관 없는 녀석― 그러니까, 워즈 같은 존재만 현세계에 존재했다면 상관없어. 애초에 워즈는 마제스티의 날이 도래하기 전까지 현세계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그는 관찰자이자 방관자다. 하지만 잊혀야만 하는 역사를, 이상(異常) 덩어리인 내가 기억하면 안 돼! 기억해내는 순간 기억을 더듬게 되고, 그걸 훑어보는 과정 자체가 모순임을 결국 자각하게 돼버려! 넌 모를 거다. 지금 이렇게 말을 꺼내는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무채색의 불쾌한 골짜기에 갇혀 잔뜩 일렁이는 괴로운 기분이란 걸.」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쉬지도 않으며 펼치던 게이츠는, 연설이 끝난 뒤 숨을 고르고는 시선을 다시 내 얼굴을 향해 두었다. 제대로 이해했느냐는 눈빛으로, 내 볼을 덥석 잡은 채 고양이처럼 나를 노려봤다. 그는 엄한 표정을 풀고서는 피식 웃었다. 그것은 미소였지만, 씁쓸한 게 티가 나 그걸 보는 내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소고, 미안하게 됐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첫날부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제멋대로 이별이라고 정해버려서.”

 

“잘 알고 있으면 그런 말 하지 마, 게이츠.”

 

“……소고, 이 세계에서 모두가 나를 ‘게이츠’라 부르는 것도 이전 세계의 영향이야. 그것마저 자각하지 못한 것 또한 이레귤러 탓이고.”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줄래.’를 굳이 다른 말로 돌려서 나타낸 게 표가 났다. 나는 입을 비죽이며, 게이츠를 끌어안았다.

 

“케이토, 비겁하게 굴지 마. 너야말로, 같이 불꽃놀이나 보면서 술이나 한 캔 까다가 이상한 말이나 하더니, 갑자기 나만 두고 떠난다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아?”

 

“알아, 알지만… 시간이 없어. 내가 이 진리를 깨닫게 된 이상 나는 잊히게 될 테니까.”

 

“잊힌다니, 잠깐―”

 

나는 다급히 손을 뻗어 그의 등을 더 세차게 붙잡아보려 했지만, 도리어 ‘그’ 자체는 더 옅어져만 갔다.

 

“케이토, 게이츠! 나는… 널 잊기 싫어!”

 

“알고 있다, 소고.”

 

“알면서 왜――!”

 

“너를 위해서다.”

 

내가 눈물을 왈칵 쏟기도 전에, 게이츠는 내 말을 가로챘다.

 

“너를 위해서, 잊히는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어라, 그런데 혼자가 된 기분이 전혀 쓸쓸하지 않았다. 나는 두 명이서 앉아도 될 정도로 넓은 돗자리에 음식이 너저분하게 널브러져 있는 걸 보고, 경악하였다.

 

‘우왓, 나 이 정도로 대식가였던가? 맥주를 두 캔이나 까다니, 심지어 라멘에 과자까지 먹었네. 헤에― 그런 거구나. 새해가 온단 거에 너무 들떠서 마구 과음한 탓에 필름이 끊긴 게 틀림없어! 혼자서 먹어서 다행이네. 츠쿠요미 앞이었으면 어땠으려나. 추태 보였겠지…. 엄청나게 혼났을지도 몰라! 으, 추워. 얼른 쿠지고지당으로 돌아가자! 할아버지는 지금쯤 주무시고 계시겠지. 조심히 귀가해야겠다. 귀가 밝으셔서, 자다가 깨실지도 모르니까…….’

 

선선한 바람이 휘날리는 가운데, 나는 시끄럽게 독백을 불렀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공원의 구석진 언덕을 뜨면서, 저 너머에서 터트렸던 웅장한 불꽃놀이가 끝난 걸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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